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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예술

빛에 따라 달라지는 인상주의 미술

by 하늘이5 202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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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까지 에 일어난 근대 예술로서 인상주의 또는 인상파는 파리 전시회에서 조롱하는 말로 시작되었다. 사진기의 발달로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상업과 무역의 발달로 부를 축척한 시민계급이 미술품을 소장하게 되었다. 인상주의 특징은 빛에 따라 색채의 시시각각 변화하는대로 빠르게 붓터치를 하며 표현하는 기법이다. 당시 프랑스 화가들은 살롱이라는 곳에서 일년에 한번 그림을 발표했는데 심사위원들은 보수적으로 심사하였기때문에 모네, 마네 , 르누아르, 드가 등의 신인 화가들을은 등단하기 어려웠다. 1874년 낙선한 화가들이 파리 카프신가에서 전람회를 열었다. 이때 모네 작품에서 인상파라는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본론

주요화가

1)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 프랑스 출신으로 1874년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unrise 1874>는 인상파라는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은 해가 막 떠오르는 새벽을 그린 것으로 밝은 색이 주를 이룬다. 어둠의 표현의 검은색을 쓰지 않고도 그림자와 어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당시로서는 혁신이었다. 바다와 하늘을 다채로운 색채로 적절히 활용하여 색의 명도와 채도를 보이는 대로 인상을 잘 표현하였다. 1890년 이후에는 거초더미 < Les foins 1891 > 연작을 통해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그림자와 색채를 통해 다채롭게 표현하였다. 이 그림으로 밀레의 그림을 모티브로 그렸으며 폴 세잔(Paul Czanne)에게 '모네는 신의 눈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모네는 태양이 지까지 하루종일 빛에 대한 연구로 작품을 그리다 시력이 나빠졌다. 그는 1893년 지베니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원을 가꾸고 연못을 만들어 수중식물을 심어 수련을 많이 그렸다. 수련의 화가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은 인상주의 화풍으로 <부채를 든 자화상 1915>의 작품을 남겼다.

2) 에두아르 마네
에두아르 마네는 (Edouard Manet 1832 -1883) 프랑스의 화가로서 사실주의에서부터 인상주의 다리역할을 한 화기이다. 그는 살롱에 작품을 출품했지만 낙선을 거듭하였다. 1863년 풀밭 위의 점심식사 <Le Djeuner sur lherbe 1863>이라는 작품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당시 시대 상황으로 나체의 여인을 그린다는 것은 신화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마네의 이 그림은 소실된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 >을 레몽디의 판화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전통적인 명암처리보다는 평면으로 흑백의 대비를 이용하여 그려져 있다. 또 유명한 작품으로 올랭피아 <Olympia 1863>는 내부 공간에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투박한 올랭피아라는 여성을 묘사하고 옆에는 흑인 하녀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고 오른쪽 하단에는 검은 고양이가 있다. 마네는 이 작품으로 비난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에밀 졸라는 걸작이라고 마네를 지지하였다. 마네의 뛰어난 작품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Un bar aux Folies Bergre 1882> 은 일을 하고 있는 여성 바텐더의 모습이다. 뒷배경으로는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교장 같은 풍경이다. 이 그림의 구도는 실제 구도가 아니라는 논쟁서부터 여성이 매춘부라는 말까지 구설수에 오른 작품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와서 실제 사진 찍기에 성공하면서 마네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3) 에드가 드가
에드가 드가( Hilaire Germain Edgar De Gas 1834 ~ 1917)는 프랑스 화가로 그 당시 다른 화가들은 풍경화를 많이 그렸으나 드가는 인물에 중점을 두었다. 드가는 작품의 소재로 그 당시 천한 신분의 발레리나를 주로 그렸고 역동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잘 묘사하였다. 그는 부드러운 파스텔이나 유화물감으로 표현하였다. 발레 수업 <La Classe de Danse 1873–1876> 장 밥티스트파우레에 의해 의뢰받았다. 이 작품은 오페라좌의 발레 수업을 토대로 그린 것으로 앞에 있는 나이 든 남자는 당시 이름을 떨쳤던 쥘 페로로다. 색채의 사용은 당시 유행하고 있던 일본 판화의 영감을 받았다. 드가는 발레리나의 모습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작업실에서 수업이 드로잉을 하고 많은 준비 끝에 이 그림을 완성하였다. 발레리나는 무대 위의 모습은 화려하지만 그 뒤에는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다. 그 밖에도 드가의 작품으로 <압생트 1876> , <대야 1886 >등 많은 작품들이 있다. 그는 작업실에서 목탄, 파스텔, 에칭, 드라이 포인트 등과 같은 방법으로 혼합하여 새로운 효과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83세까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외도로 여성을 좋아하지 않아 평생 홀로 살았다.

4) 르누아르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1841~ 1919)는 파리 화가로 <양산을 든 리즈 1867> 작품  야외에서 그린 그림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그 후로 미술상인인 폴 뒤랑 뤼엘에게 눈에 띄어 작품을 계속 의뢰받았다. 그의 유명한 작품으로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Bal du Moulin de la Galette, Montmartre 1876>는 몽마르트 언덕 작은 정원에서 열린 무도회를 바탕으로 그린 작품이다.
맨 처음 보이는 앞의 두 여성은 르누아르의 모델과 그의 자매를 그린 것으로 한 남자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3명의 남자들은 화가들이다. 이들은 모두 활기차게 무도회를 즐기고 있다. 이 작품은 미술 비평가 플로 오스카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르누아르 아들 장은 영화감독이(남부사람 1945) 되어 아카데미상을 받을 정도로 재주가 뛰어났다.

결론

인상파 화기의 특징은 전 시대의 신화적인 내용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본 현실의 대상을 묘사하는데 집중하였다. 햇빛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채를 중요시하였다. 또한 그림자 부분에서 기존의 검은색보다는 보라색계열이나 푸른색계열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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