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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예술

낭만주의 감성적 회화의 아름다움

by 하늘이5 2023.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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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서양 낭만주의 시대 회화는 18세기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 발전한 미술 운동 중 하나이다.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지성보다 감성적 표현을 중요시하며 산, 강, 바다 등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했다. 다음은 서양 낭만주의 시대 회화의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대표적인 화가들

1)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이다. 신비주의를 추구하며 영국의 초기 낭만주의 미술을 열었다. 회화에서는 유화보다는 수채화를 사랑한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거대한 용과 싸우는 <태양의 옷을 두른 여인 1806-1809> 은 거대한 용은 7개의 머리, 10개의 뿔과 날개가 달려있다. 태양의 옷을 두른 여인은 이 거대한 용에 대적하고 있다. 그의 독특한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2) 외젠 들라크루아(Eugne Delacroix 1798-1863)는 프랑스 샤랑통 생 모리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화풍은 현실을 초월한 상상 세계에서의 인간의 모습과 영웅적인 모습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의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은 프랑스 7월 혁명을 묘사한 작품으로 민중들이 진격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가운데 여성은 자유를 상징하며 한 손에는 프랑스 국기를, 다른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다. 1970년대 100프랑 지폐에 이 그림과 함께 모델로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하고있다.

3)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44-1840)는 독일의 화가로, 자연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정신적 상태를 표현했다. <바닷가의 수도승 1809-1810 >의 작품은 우울한 느낌이 든다. 십자가, 고독한 인물, 폐허가 된 교회가 그의 그림 반복 모티브이다. 프리드리히는 그의 풍경 속에 고독한 인물들을 빛과 그림자를 사용하여 그림의 깊이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뛰어났다.

4)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 1776-1837) 컨스터블은 영국의 화가로, 시시각각 변화는 자연의 풍경을 자연 경치와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그의 작품은 영국의 자연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 건초마차 1821> 무성하게 무거진 초록빛 숲과 그림 속의 방앗간은 아버지의 소유였고 허름하게 보이는 집은 이웃사람이다. 1821년 영국 로열 아카데미에 전시되었지만 빛을 보지 못하다가 1824년 파리 살롱전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다.

5) 테오도르 제리코 (Thodore Gricault 1791-1824)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이다. 그의 대표작 <메두사호의 뗏목 1819 >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떠난 해군 군함으로 당시 구조되었던 선원들에게 이야기를 직접 듣고 긴 시간 동안 자료를 준비하여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살롱에 출품하여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제리코에게는 낭만주의 시대 회화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며, 이 시기의 미술은 감정과 상상력의 풍부한 표현을 통해 특별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했다.

6)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영국의 화가로 감성에 호소하는 빛과 색채를 화면에 도입하여 후반기로 갈수록 마치 추상화와 같은 독창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는 로열 아카데미에서 전시한 <바다 위의 어부들 Fishers at Sea 1796 >는 유화그림이다. 바다는 터너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7)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Josde Goya y Lucientes 1746-1828)는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마하 연작은 고야의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마하는 이상화된 여성이다. 1800년에 <옷 벗은 마하 >를 그렸으나 신성 모독의 논란으로 이듬해인 1803년에는 < 옷 입은 마하>를 다시 그렸다. 1813년 스페인 종교재판에서 이 작품은 외설스럽다고 압수하였으나 1836년 반환되었다. 이 그림은 스페인 프라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1808년에서 1814년까지 프랑스와 스페인 간에 반도 전쟁이 일어나자 고야는 전쟁에 관한 여러 기록화를 남겼다. 특히 사건을 그린 <마드리드의 1808년 5월 2일> 은 칼을 찬 병사들이 무차별하게 칼을 휘두르는 모습니다. 또한 <1808년 5월 3일>의 처형 이 유명하다. 이 작품은 총을 겨누는 프랑스병사와 죽음을 앞둔 양민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다. 작품의 중앙이 되는 흰 옷을 입은 청년은 애절한 눈빛으로 손을 들고 있다. 그가 입고 있는 옅은 노란색 바지는 땅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의 흘린 피의 색감과 심한 대조를 이룬다. 오른쪽은 프랑스 군인으로 보이는데 모두 몸을 앞으로 숙이고 총으로 위협하는 자세이다. 왼편에는 희생자들이 행렬로 일부 사람은 이미 쓰러져 죽어 있다.
고야는 그는 프랑스 대혁명의 지지자였지만 자신의 조국 스페인을 침략한 프랑스군의 만행을 실감 나게 묘사하였다.
1810년에서 1820년까지 제작한 <전쟁의 재난 Los Desastres de la Guerra>은 전쟁 중에 일어난 학살과 비인도적 만행을 기록한 판화집이다.
전쟁이 끝나자 고야는 퀸타 델 소르도에서 검은 그림 연작을 남겼다. 이 그림들 속에서 그는 이성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광기를 묘사하였다. 고야의 작품은 강한 명함대비로 인간 본성의 어두움을 표현하므로 절망과 환멸을 대중에 전달한다.

결론

낭만주의 회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역사와 전설에 대한 상상력을 중심으로 한 미술 사조이기도 하다. 독일의 비평가 슐레겔 형제(August Wihelm Schlegel과 Friedrich Schlegel)가 처음으로 낭만주의자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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