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글:
시각적인 아름다움의 선사시대 미술은 흥미롭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를 통해 조상들의 미술시작을 알아본다
목 차
1. 서론
2. 본론
1)알타미라동굴 벽화
2)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
서론
아름다움의 표현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 중심에 회화가 있다. 화화는 평면적인 공간 위에 형태, 색채 등 요소로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미술 회화의 유래는 인류의 초기부터 시작되었다. 선사시대 회화로 스페인 북부지방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프랑스 베제르 계곡에서 발견된 라스코동굴 벽화이다.
본론
1) 알타미라 동굴 벽화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아울러 보여주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주 산탄데르 서쪽 30㎞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동굴 벽화는 기원전 15,000년에서 10,00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예술적 표현이 아닌 동물들이나 사물, 사냥 장면 등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당시 사냥과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1985년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던 알타미라(Altamira) 동굴에 스페인 북부의 17개의 구석기시대 동굴 벽화가 범위가 확대되어 알타미라 동굴과 스페인 북부의 구석기시대 동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었다. 이 유산은 우랄 산맥으로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유럽 전역에서 발달한 구석기시대 동굴 예술의 최고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 천장에는 들소와 말, 사슴 같은 동물들이 여러 가지 색채로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동물의 그림은 검은 숯으로 윤곽성을 그린 뒤 안쪽에 붉은 안료로 색칠하여 바위의 도드라지고 오목한 부분을 활용해 더욱 생생하게 보인다. 동굴 벽화의 예술적 완성도도 높아 보인다. 1879년 스페인의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이던 마르셀리노 산즈 데 사우투 올라가 8살 딸과 함께 처음 동굴 조사를 하게 된다. 그 후 그와 마드리드 대학의 후안 비라노바가 현장 조사를 하면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임을 알아냈다. 프랑스의 가브리엘과 에밀 카흐탈리아 등이 고고학 전문가로서 현지를 방문했으며 사우투 올라가 보관하던 그림을 보게 된다. 그들은 그림이 가짜라고 주장했으며 1880년 리스본에서 열린 선사 문화워크숍에서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기도 했다. 사우투올라는 심지어 사기죄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1902에 이르러 여러 선사시대 그림이 발견되면서 구석기시대 알타미라 동굴 벽화로 인정받았다. 후에 에밀은 고고학저널에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정작 그림을 세상에 알린 사우투올라는 1년 전에 세상을 떠나 어떤 명예도 누리지 못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면서 벽화에 손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77년 관광이 전면 중단됐고 1982년에서야 관광이 재개됐지만 극히 일부만이 관광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2001년 마누엘 프란켈로와 스벤 네벨이 인조 알타미라 동굴을 지었다. 드리드 국립 고고학박물관과 독일 뮌헨(1964), 일본에 복제본이 보관되고 있다.
2)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프랑스 누벨아키텐 레지옹(Nouvelle-Aquitaine Reacute gion)의 베제르 계곡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유적은 몽티냐크(Montignac)에서 발견된 라스코(Lascaux) 동굴벽화다. 들소, 말, 사슴, 염소 등 100여 마리의 동물들이 등장하는 사냥 장면을 그린 그림은 세밀한 묘사가 잘 표현되었다. 벽화 중에는 말에 관한 벽화가 가장 많고, 17세기 초 멸종한 유럽 들소인 오록스, 유럽들소, 야생염소, 그리고 심지어 암사자 그림도 발견됐다. 구석기 인들은 광물에서 추출한 천연 색소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망간이나 목탄을 이용해 밑그림을 그렸고, 붉은색은 적철석(hematite)을 붉은 진흙이나 황토색 진흙인 오커와 혼합하고, 노란색은 철옥시수산화물(iron oxyhydroxides)을 사용했고, 동물의 뼈나 식물을 태워 그 재로 검은색을, 망간의 산화물로 짙은 푸른색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근육과 뼈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상상을 더하여 표현하였다. 지금의 피카소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라스코동굴 벽화를 맨 처음 분석한 예술사학자이자 신부인 아베 브로이(Abbeacute Breuil)는 라스코동굴을 선사시대의 시스틴 성당이라 불렀다.
1940년 9월 8일 프랑스 중서부 도르도뉴(Dordogne)주 동부 몽티냑(Montignac) 마을에 살던 10대 청소년 마르셀 라비다(Marcel Ravidat)는 지하 동굴로 이어지는 수직갱도 입구를 발견했다. 마르셀은 세 친구와 함께 램프로 동굴 속에서 발견한 것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세밀하게 표현된 벽화였다. 그들은 동굴 벽과 천장에서 수많은 동물그림을 발견하게 되었다. 라스코동굴의 갤러리와 통로는 전체가 240m다. 이곳에 그려진 2,000여 그림 중 900개가 동물그림이고, 나머지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기하학적 모형이다. 이 벽화들이 현재까지 고스란히 남겨진 이유는 동굴 입구가 기원전 1만 3,000년 전에 산사태로 막혔기 때문에 보존될 수 있었다.
라스코동굴은 1948년 개관해 매일 1200명 정도가 방문했다. 이들이 내뿜은 이산화탄소, 습기, 열은 동굴 벽화에 영향을 주어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는 1963년 동굴을 폐쇄하고 원래 상태로 재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프랑스는 1983년 라스코동굴 II를 원래 장소에서 200m 떨어진 곳에 건축하고 벽화의 90%를 재현했다. 그러나 라스코동굴 II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움직임이 원래 동굴에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을 내렸다. 라스코동굴 III는 외부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벽화들이다.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이해 2016년 광명시에 전시되기도 했다.
결론
알타미라 동굴의 정교한 입체적 표현때문에 사기로 고소당할 만큼 구석기에 살았던 원시인들의 예술적 혼은 빛이 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시인들은 미개하지 않았다. 사물을 관찰할 수 있었고 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성에 관해 심도 있게 표현할 줄 알았고 거기에 상상력을 더하여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동굴 벽화가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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