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는 40세 전후 늦은 나이에 요석공주와 사랑에 빠진다.
3일간 사랑만 나누고 먹튀한 남자인데 이를 파계를 한다. 말이 파계지 스님으로써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거다. 기생집을 드나들고 술을 마시고 죄책감인지 뭔지 거지들과 어울려 다녔다.
원효 성은 경주 설씨이고 이름은 사례 , 어렸을때 이름은 서당이었다.
원효는 어린 나이에 출가했는데 출가 이전에는 화랑이었다
그는 신라의 승려로 한국 불교계의 유명한 고승으로 의상과 라이벌 관계였다.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해골물을 마시고 '모든 건 자기 마음에 달렸다'라고 하면서 당나라 유학을 포기한다. 10년 전 요동까지 갔다가 순라군에게 첩자로 몰린적이 있다.
원효는 6두품 출신이다.
신라시대에 6두품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신분제에 가로 막혀 고위관직에 진출할 수 없었다. 하대 신라에서는 이들은 반 신라인이 된다.
요석공주는 무열왕의 딸이다.
큰 키와 매혹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김흠운인데 양산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된 원효는 이상한 노래를 퍼뜨렸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 주겠는가? 내가 하늘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 (출처 위키백과) 자루없는 도끼는 과부를 뜻한다. 궁에서 사람이 나와 문천교를 지날 때 원효는 일부러 물에 빠지는 연기 해서 요석공주를 만날 수 있었다. 요석공주는 원효와의 사이에서 3일간의 사랑으로 설총을 나았다.
원효는 무애가를 불러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인물이다. 글을 모르는 대중에게 '나무아미타불'만 외쳐도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당시 불교는 왕족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금강경을 해석하고 고려시대와서 숙종이 원효의 이름을 얘기했을 정도로 유명한 승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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